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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글쓴이 : 윤희문 2018.02.15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굳이 세월 뒤돌아보지 않아도

지금 순간

숨쉬고 살아 있음에

것으로 사는 것이라고

하나라도 내세울 것이 없기에

오직 주님의 은혜로 살고 있다고

감사할 밖에 없습니다

 

어려운 고비를 넘고

험한 파도 헤치고

새롭게 일어서게 하신

묻은 주님의 손이

지금도 나를 붙들고 계시기에

감사할 밖에 없습니다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 무섭고

질병의 고통이 절망을 몰아오고

가족 걱정 생활고에 시달려도

풍요로운 오늘을 주신 주님

영원토록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돌보시기에

감사할 밖에 없습니다

 

주님 바라보는

마음에 부으시는

바다같은 주님의 은혜는

어제나 오늘이 변함없어

선택받고 세움받고 쓰임받는

나는 하나님의 사람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감사, 감사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초대 글쓴이 : 윤희문 2018.02.07

십자가의 초대

 

기도하기에 너무 바쁘고

기도하기 싫다면

어디로 가는지

사는지도 모르면서

가장 사는 것처럼

뿌듯한 인생을 산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따라 살자니

괴롭고 귀찮다면

이웃에게 짐이 되고 괴로움을 주는 사람입니다

 

교회가 우습게 여겨지면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볼일 없는 시시한 인생입니다

 

예배가 가장 소중하지 않다면

주님께도 최우선이 되지 못하는

채울 없는 목마름만 남는

물이 새는 터진 웅덩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지 않으면서

내가 왕이 되려는 어리석음 버리고

 

믿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사순절

십자가를 붙드는 손에

하늘은 가장 좋은 것으로

넘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자신을 속이는 훈련이 되지 않게 하십시오 글쓴이 : 윤희문 2018.02.01

자신을 속이는 훈련이 되지 않게 하십시오

 

이번 주부터 봄학기 훈련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훈련이 중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혹시라도 훈련을 안수 받고 집사, 장로가 되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로만 알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게 훈련을 받으면 본인의 시간도 낭비요, 인도자의 시간도 낭비요, 나아가서는 하나님 나라의 귀한 모든 자원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시간 때우기로 자리만 지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자신과 이웃을 기만하는 일입니다.

 

훈련이란 무엇을 강화하거나 인격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훈련을 받았는데도 아직 정도 밖에 안되냐고 따질 일이 아닙니다. 훈련은방향을 맞추는 ’ 입니다. 우주선을 쏴서 달에 보낼 처음 하는 작업이 각도를 맞추는 일입니다. 치의 오차도 없이. 그렇지 않으면, 어뚱한 데로 날라가 버립니다.

 

신앙 생활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방향이 잘못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내적 성향 올바른 각도로 맞추려는 노력이 훈련입니다. 이것이 맞추어져 있지 않으면, 결국은 문제가 터지고, 신앙 생활이 찌그러지고 엉망이 되고 곁에 있는 사람들을 괴롭히게 됩니다. 오히려 풋볼 공처럼 어디로 튀어나갈지 없어 질서 대신에 혼란스럽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훈련할 ,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모습으로 땅에 오신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는 일입니다. 다음에야 주님을 사랑할 수도 있고 따를 수도 있습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따른다고 하면 예수님의 모습을 닮는 것이 아닌 나도 모를 이상한 곳에 와있게 됩니다.


때론 교회를 섬긴다고 하면서내가 교회를 바로 잡아보겠다' 매우 위험한 생각을 하게도 됩니다. 겸손히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가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쓰임받을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혼자서 하는 영적 훈련이 있다면 크게 잘못 있습니다. 인도자가 있고, 같은 수준이라도 사람 이상이 모이면 자기 내면에 담고 있던 생각이 객관화가 되어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사실 내가 주체일 때는 깨닫지 못하다가 문제가 객관화 되면서 참으로 간단한 문제로 환히 보이며 깨달아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자라가며 자기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방향 전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새로운 것은 더 배울 것이 없습니다. 반복해서 훈련 받으십시오. 내 속에서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같은 훈련도 다시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왜 그러셨나요? 글쓴이 : 윤희문 2018.01.31

왜 그러셨나요?

(사순절의 질문)

 

주님 기뻐받으신 제물드린 동생은

왜 죽이시고

시기와 질투로 그를 돌로 쳐죽인 형

오히려 그를 죽이면

일곱 갑절로 벌을 받게하면서

왜 살리시고 지켜주셨나요?

 

배다른 착한 동생 죽이려다

노예로 팔아먹은 형들

그 무서운 죄를

왜 눈감아 주셨나요?

 

시아버지 속여 임신한 며느리

그 자식 유다 지파 잇게하고

예수님 조상으로

왜 족보에 올리셨나요?

 

신실한 부하 장수 아내와 간통하고

임신한 사실 숨기려

그 남편을 청부 살해한 

피가 거꾸로 솟구치고

구역질나는 그 죄를

어찌 그냥 보고만 계셨나요?

 

30에 팔것을 아셨으면서도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가서 할 일 하라 하시며 보내시고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하며 배반해도

그도 버리지 않으시고

사람이 그렇게도 없었나요

왜 다시 찾아가

나를 사랑하냐고 물으셨나요?


지금도 그런 죄를 짓는 사람

그 때처럼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고

그냥 두시겠습니까

 

세상에  죄없는 사람 없어서

내가 너도 위하여 대신 형벌받고

십자가에서 죽었다 하시며

나도 그냥 놓아 두시는 것인가요?

왜 그러시나요?

 


밤 11시 글쓴이 : 윤희문 2018.01.23

11 

 

하룻길을 달려온 시간들이

숨을 내쉬고

어둠의 품안에 안기는 고요함

 

처마 끝머리에 붙어있는

밤하늘의 별들이

마음에도 떠오르며

주님 맞을 채비를 한다

 

밤길을 달려

아기 예수를 만난 목자들처럼

주님 앞에 엎드리며

천사들의 찬송을 부른다

 

11

말씀을 펴며

마음이 말구유가 되고

주님 오셔서 말씀하실

나는 주님 안에서

인생의 가슴을 크게 편다

 

그래서

하루의 마침이 시작이 되고

시작이 마침으로 이어지는

주님과 내가 하나되는 시간

11


사랑과 미움 글쓴이 : 윤희문 2018.01.18

사랑과 미움


어찌 마음에

둘이 함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받지 않고도 주고 싶은 사람

준다 해도 거절하고 싶은 사람

사랑과 미움이 안에 함께 있다


나쁜 말을 해도 노래처럼 들리게하고

좋은 말을 해도 마음이 굳어지게 하는

사랑과 미움이 이렇게

마음을 둘로 나누어 갖고 있다


멀리서도 달려가 손잡게 하면서도

마주치기 싫어 고개를 돌리는

사랑과 미움은 마음을

뜨겁게도 하지만 얼어붙게도 한다


허물과 실수도 예쁘게 보이는 사랑

미움은 일을 잘해도 흠을 찾게하고

없는 허물도 만들어 내는

사랑과 미움은 마음의 저울


좋으면 나도 좋고

싫으면 나도 싫다하는

사랑은 그렇게 받아주는데

미움은 그저 싫다고만 하면서

멀리 멀리 밀쳐내기만 한다


사랑과 미움

마음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어디에 있는지를 찾게하는

숨박꼭질하게 한다


미움은 숨겨두고

사랑은 찾아서

주님과 함께 천국을 살고 싶다



락빌 교회여 글쓴이 : 윤희문 2018.01.11

락빌 교회여

새벽과 함께 일어나 뛰어라

 

주님도 주무시지 않고

깨어 기다리시니

말씀과 기도를 품고 일어나는 교회

주님께서

교회라 하실 것이다

 

주님 옷자락으로 덮어주시는

위로와 평안이 차고 넘쳐서

떠오르는 해도 부러워하는

능력과 열정의 교회가 되어

복음의 뜨거운 기운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락빌 교회를

세상이 주님의 교회라 것이다

 

슬퍼하는 자매와 함께 울고

아픔이 있는 이웃의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어지며

낮은 곳에 있는 형제보다

가난하여져서

주님이 베푸시는 은총으로

서로에게 부요한자 되어라

 

이런 우리를 보시고

나의 영광의 아들이라 딸이라

주님께서 안아주시고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아낌없이 부어주시리니


락빌 교회 성도들

함께 입을 모아

우리 교회라 하며

기도와 말씀으로 새벽을 열듯

하늘의 보물 창고를 열어

복되고 복된 하늘 백성 되리라

 

락빌 교회여

새벽과 함께 일어나 뛰어라


한 영혼을 주님께로 글쓴이 : 윤희문 2018.01.08

영혼을 주님께로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나타나실

물으시겠다고 엄히 명령하신

예수 믿고 구원받으십시오

전도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주님의 꾸중이 두렵지도 않다면

나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 아니다

 

지난 세월, 지난 , 지난 주간

그리고 어제 하루

예수 믿고 구원받으십시오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세상이 나를 그리스도인이라 하겠는가

어찌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라고 있을까

 

그런 우리들이라면

영혼이라도 모으시는 주님께

오히려 거침돌이 되는 것을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있다 하나

실상은 죽어있는 사람

심판하실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 영혼의 진단서는 사망이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예수 믿고 구원받으십시오

꾸준히 힘쓰는 전도자가 되면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얼마나 오래 사시게요 글쓴이 : 윤희문 2018.01.04

얼마나 오래 사시게요

 

인류의 조상들

참 오래들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아들딸 낳고 살다가 죽었다고 하니

얼마나 오래 산들

땅 한평 누울 자리 차지할텐데

무얼 더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나이 육십 중반

칠십을 바라보면서

여기 저기서

손자 손녀들 보았다는 소식

하루가 다르게 자라가는

손주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손주들 보는 앞에서

나잇값 할 때 입니다

 

아직은 살아보지 못한

칠십대 팔십대

할 말은 없지만

지금 막연히 드는 생각

가는 길 가벼워야지

내려놓고 또 내려놓아야

삐질 일도 없고

싸울 일도 없을 것을

 

한뼘도 못되는

마음 하나

아직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나이 들어

추위를 더 탄다고

애꿎은 나이 탓만 합니다


깨끗한 시작 글쓴이 : 윤희문 2018.01.01

깨끗한 시작

 

시작은 하나님 한 분 입니다

물론 끝도 하나님이 맺어주십니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함께 하시는

땅이 그렇게도 보기 좋다 하시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우리들에겐 복을 베푸셨으니

 

뒤돌아보지 말고

낡은 옷 허물처럼 벗고

결코 머뭇거리지 말고

보시기에 참 좋았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새해를 시작합시다

 

너 때문이라손가락질하여 비겁하지 말고

단지 나 때문이라겸손히 손 내밀어

아직 식지 않은 따뜻함을 전하는

사랑의 몸짓으로 새해를 맞이합시다

 

의롭다 하고 거룩하다 하지 말고

내 모습 그대로 주님 바라보며

내 속에 깨끗한 영을 창조하시고

내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소서

믿음과 소망으로 일어서는 새해

 

이 모든 것보다

서로 사랑 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어디 있어도

가야할 곳 머무를 곳은

오직 주님 한분이기에

뒤돌아보지 말고

깨끗하게 시작하는 새해가 되십시오

 

오는 내일은 분명

아름답고 찬란하며 눈부실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하실 수가! 글쓴이 : 윤희문 2017.12.21

어쩌면 그렇게 하실 수가!

 

우리는 흔히 예수님의 겸손을 쉽게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매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우리를 초대해 주셨습니다. 성탄절을 기뻐하며 진정한 평화와 쉼이 우리 가운데 있는지 돌아봅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바울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지 이번 성탄절에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는 겸손! 예수님의 겸손 앞에 참으로 얼굴을 들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자아가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자아는 우상이며, 마귀는 자아를 부추킵니다. 세상은 오직 권리만 가르칩니다. 자아를 풍선처럼 부풀려줍니다. 그래서 내 뜻, 내가 즐거워지기 위해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자아가 우상인 사람의 특징이 있다. 화를 낸다. 짜증을 낸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상이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아내인 루스에게 물었다. 목사님은 아무 문제없는 남자였나요? 물론 아니죠. 우리와 똑같은 허물 많은 인간입니다. 그럼 어떻게 그런 좋은 협력을 있었나요? 인상적인 대답을 합니다. 빌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Gods job)입니다. (My job) 빌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그냥 아내의 옷을 입었기에 그래서 그냥 사랑했다는 뜻입니다. 심각한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냥 아내의 옷을 입은 것이다. 그리고 아내가 해야할 일을 충성되이 행한 것 뿐입니다.

 

하나님도 이것 저것 따지셨다면 이 세상에 사람으로 몸으로 오실 수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단순하게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그냥 옷 입듯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우리도 따지지 말고 사랑 기쁨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유와 절제!(5:22-23) 성령의 열매를 그냥 입듯이 입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단순하게 살다 보면 우리도 어찌 이런 일을 나도 할 수 있을까! 놀라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요? 새사람을 입으세요.


멀고도 가까이 계시는 주님 글쓴이 : 윤희문 2017.12.14

멀고도 가까이 계시는 주님

 

가난한 마음이 주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자기 욕심과 의에 빠져있던 유대 사람은 예수님을 찾지도, 경배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을 알았던 제사장과 율법학자들도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헤롯왕은 유대 사람을 위해 아름다운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도 자기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들 모두가 태어나실 예수님과 물리적으로는 가까이 있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주님께 가까이 한 사람은 없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멀리 있었습니다.

 

참된 은혜는 마음의 중심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나 상황이라도 사모하는 마음이 주님을 찾게하고 만나게 합니다. 동방박사들은 먼 나라의 이방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도 없었고, 구약의 율법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늘에 새로운 별이 나타나자 그리스도가 오심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미 받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로도 구세주의 탄생을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갈 길을 알지 못했지만 사모하는 마음이 그들의 길잡이가 되어 주어 탄생하신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져온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수님께 경배하며 예물로 드립니다. 이 예물은 아기 예수가 헤롯왕의 핍박을 피해 이집트로 갔을 때 대단히 유용한 생활 자금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부족하고 어려운 환경이 은혜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얼마나 주님과 가까이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예배당에 있으면서도 우리는 주님과 아주 멀리 떨어져있지 않나요? 예수님을 모실 내 마음의 길을 준비하는 대강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헐벗은 겨울이 봄을 기다리듯 주님을 기다립니다. 구유통처럼 더러운 마음을 비우며 주님 맞이할 마음의 길을 준비합니다. 소란한 웃음 속에 감추어진 외로움과 분노, 질투, 두려움은 회개의 눈물로 씻어내기를 원합니다. 움켜쥐기만 했던 손을 펴 서로 마주 잡고 주님께 돌아오는 기쁨과 평화의 대강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기쁨, 우리의 힘 글쓴이 : 윤희문 2017.12.07

하나님의 기쁨, 우리의 힘

 

우리가 신앙 생활을 잘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올까? 기뻐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성령의 권능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언제 기뻐하실까?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성경의 하나님의 사람은 모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한 사람들입니다.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가 천사의 방문을 받고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신이 성령으로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마리아는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순종했습니다.

 

우리의 순종은 하나님을 기쁘게해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의 순종은 하나님 아버지께 은혜를 입은 자가 되게 하며 세상을 자신있게 살아갈 힘을 줄 것입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불가능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노아는 사람들의 조롱 속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여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얻고자 목숨을 걸었습니다. 스데반은 날아오는 돌 앞에서도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용서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우리에게도 기쁨과 평화,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우리가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면 험한 골짜기나 풍랑이는 바다에서도 살아갈

활기찬 힘을 받게 됩니다.

 

무엇이 보이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보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섬기기에

부족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순종과 겸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순종과 겸손의 열매를 함께 거두는 평화, 기쁨,

감사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장애인에 대한 에티켓 글쓴이 : 윤희문 2017.11.28

장애인에 대한 에티켓

 

해마다 12 둘째 토요일엔 우리 교회에서 밀알 선교단의 성탄 잔치를 우리 교회에서 하고 있습니다. 장애우들을 섬기는 보람과 기쁨으로 땅에 섬기는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시간입니다. 올해는 12 9 오후 5시에 시작합니다. 여선교회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교우님들이 운전 봉사로 장애우들의  교통을 돕게 됩니다. 함께 섬겨주시는 교우님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장애우들과 교제할 필요한 에티켓을 옮겨 적어 봅니다.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무엇보다도 먼저 장애를 가진 사람이 나와  동일한 명의 인격체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장애를 가진 부분에서 몇가지 특수한 제한점을 제외하고선 다른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2.      장애인을 만날 때는 자연스럽게 대하십시오. 인간적으로 대등한 관계에서 친절하게 관심을 표하십시오.

3.      오직 그의 요구가 있을 때만 도우십시오. 많은 시각 장애인이 남의 도움이 없이 지내고 싶어하는 것처럼 장애인들은 넘어졌을 스스로일어나고 싶어합니다. 도움을 주되 요구가 있을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4.      보행이나 대화시 장애인 자신의 보조대로 하도록 안내하십시오. 그리고 그와 함께 웃고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5.      모르는 장애인을 보았을 주춤하거나 유심히 보지 마십시오. 그리고 장애인을 모두 동일시하지 말고 각각 다른 인격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6.      과잉보호와 과잉염려, 과잉친절을 베풀지 마십시오. 독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친절이 아니고 쓸데없는 참견입니다.

7.      난처한 질문은 삼가야 합니다. 만약 그가 자신의 장애에 관해서 이야기하고자 때는 스스로 이야기를 것입니다.

8.      동정이나 자선을 베풀지 마십시오. 장애인은 대등한 인간으로 대우받기를 원하며 자신을 나타낼 있는 기회를 갖고 싶어 합니다.

9.      장애인과 식사할 음식 먹는 일을 돕지 마십시오.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는 당신에게 요청할 것입니다.

10.   장애인의 능력과 관심에 대해서 앞질러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의 능력과 관심에 대해 얼마나 판단하고 있는지 놀라게 것입니다.

11.   본인의 요구가없는 휠체어나 목발을 그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게 하지 마십시오. 그는 자기 손에 닿는 곳에 놓아두고 싶어할지 모릅니다.

12.   장애인과 의리있게 지내십시오. 그의 철학과 그의 유머는 당신에게 영감을 것입니다.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평화 글쓴이 : 윤희문 2017.11.23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평화

 

간혹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마음이 평안해졌다는 말을 합니다. 마음이 평안해졌다는 것은 바른 결정을 내렸다는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평안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평화는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마음이 평안해졌다는 느낌으로는 하나님의 평화인지를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평화는 비밀입니다. 오직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의 선물입니다.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평강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평화를 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을 세상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평강의 선물을 주십니다. “세상을 이긴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요일 5:4)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내 마음이 아무리 평안하다고 느낄지라도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내일의 불확실함 속에서 영혼의 불만과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향해 성큼 성큼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7장을 보면 죄수로 호송되는 바울 일행이 로마를 향해서 가는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무섭게 몰아치는 풍랑 속에서 선장도 떨고, 선주도 떨고, 바울을 호송하던 로마 장교 백부장도 떨었습니다. 과거의 경험도, 재물도, 칼과 권력도 힘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 때 바울은 배의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인생의 풍랑 속에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이 풍랑보다 내가 더 크다는 것을 믿느냐?” 우리가 , 믿습니다!” 라고 말씀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의 선물을 주십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복음 16:33)

 

 


친구여, 그대는 지금 어디 있는가? 글쓴이 : 윤희문 2017.11.16

친구여, 그대는 지금 어디 있는가?

 

아름다운 가을 하늘과 단풍진 나무들을 바라보며 가슴 깊숙한 곳에서 스며나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 아픔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받은, ‘어여쁜 그대여라고 불러주시는 우리들이 함께 있어도 가을만큼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함께 올라간 산에서 텐트를 치고 날이 새도록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친구들, 새벽에 붕어가 잘 잡힌다고 낚싯대를 던져놓고, 긴 밤을 곁에 앉아 말없이도 함께 있음에 부족함이 없었던 친구들이 그리워집니다.

 

그 때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있는지 알 수 없어도, 주님 안에서 만난 형제 자매들이 그들을 대신해 줄 수 있어야할텐데 우리는 그렇게 바라던 우정을 얻지 못하고, 큰 기대를 갖고 시작한 우정이 오래가지 못하여 실망하고 맙니다. 오랜만에 “Water Is Wide” 란 노래를 들어보았습니다. 바다가 넓어 날아서 건너갈 날개는 없어도, 우리 함께 저어갈 배를 달라는 노래입니다. 바다가 아무리 깊어도 우리 사랑이 더 깊어서, 나의 사랑, 그대와 함께라면 이 깊고 넓은 바다를 노저어 건너갈 수 있다는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는 열두명 밖에 안되는 그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시기하고 자리 다툼을 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그들은 섬기시며 불쌍하게 여기시며 받아주시고 품어주시던 주님을 닮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친구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에서 새벽에 고기를 잡고 있던 제자들을 위해 밥을 지어놓고 자녀들을 기다리던 어머니처럼, 고기와 떡을 구워놓고 기다려주셨습니다.

 

갈릴리 호수, 새벽에 제자들을 만나주신 부활의 예수님이 그리워집니다. 나는 너의 친구라고 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이 함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과 맛있게 구워진 생선을 나누어 먹으며 세상도 잊고 나도 잊을 수 있는 그 우정과 사랑이 그리워집니다. 그 때 그들은 누가 주님 곁에 앉을 것인가를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이 천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과 우리를 더욱 가까이 이끌어 주어서 환상이나 노래가 아닌 현실인 것을 깨닫게해 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베푸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요한일서 3:1)


천국엔 쓰레기통이 없다 글쓴이 : 윤희문 2017.11.08

천국엔  쓰레기통이 없다

 

회개라고 하면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눈물과 아픔이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 가슴을 치며 ',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한 세리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까지는 눈물과 아픔의 회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더욱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이렇게 기도한 세리가 의롭다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세리가 마냥 슬퍼하면서 집으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눈물이 기쁨으로 변하여 찬양하고 돌아갔을 것이 분명합니다. 회개의 기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받았을 때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혹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배로 갚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회개의 열매이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용서받은 기쁨이 삭개오로 하여금 그런 결단을 하게 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참회개와 진정한 용서가 있는 곳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 기쁨은 천국입니다.

 

복음의 기쁨 속에서 많은 것들이 회복됩니다. 회복의 기쁨입니다. 그 기쁨으로 이제 나는 더 좋은 나가 되기를 원하게 됩니다. 더 좋은 자녀됨과 부모됨을 향한 갈망이 회복됩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기쁨이 있습니다. 가정과 직장이 회복될 것입니다. 삶의 문제들을 보는 시각도 회복됩니다. 용서를 구하고 용서받은 기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쁨으로 내일을 바라보게 됩니다.

 

바로 이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구체적으로 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와 관계없는 막연한 장소나 현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삶 속에서 지금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천국은 낯선 곳이 아니라 회복의 장소이고 기쁨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모든 회복의 기쁨이 넘치는 축제의 잔치가 있는 곳입니다.

 

잃은 양 한마리를 찾았을 때도 기뻐하며 자기 어깨에 매고목자는 돌아옵니다. 한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도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작은 아들이 돌아오자 그의 아버지는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살진 송아지를 잡아 동네에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용서하고 용서받은 관계의 회복 속에서 되찾은 자의 기쁨은 더해지고, 회복된 대상의 기쁨도 더욱 넘치게 됩니다. 여기가 바로 천국이요, 그래서 천국엔 쓰레기통이 필요없습니다.


우리 글쓴이 : 윤희문 2017.11.01

우리

 

성경에는 우리라는 낱말이 창세기 1장부터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만드신 후에 사람을 만드실 때 처음으로 우리란 낱말을 쓰시면서 하나님도 우리란 공동체임을 밝혀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1:26) 특별히 사람을 만드시면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공동체로 우리의 형상,” 그리고 우리의 모양대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기도를 가르치실 때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 내가 아닌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나의 죄가 아닌, “우리의 죄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 ‘우리란 낱말을 사용하시며 신앙 생활의 공동체적인 의미를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이 쓰는 고유한 말의 표현 가운데도 우리가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 집,’ ‘우리 교회심지어 자기 아내를 우리 집사람이라고 부를 정도로 나에게제한되는 것 까지도 우리란 일인칭 복수로 확대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끈끈한 정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좀 깊이 들어가보면 우리들이 우리란 말을 쓰는 경우, ‘우리라는 말이 갖는 공동체적 뜻보다는 내가 소유하고 있다라는 의미에 더 큰 중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우리들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를 좋아하거나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입니다. 매우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동아리의 의미가 더 강합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우리가운데 끼어있지 않은 사람들을 배척하고 왕따하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 우리라는 대명사를 사용하신 것은 내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님은 우리를 빚으신 토기장이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이 수 지으신 피조물입니다.”(64:8) 선지자 이사야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색갈이나 계층으로 차별하지 않으시고 모두를 포함한 열리고 넓은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고 기도하기를 또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이방인이라도, 주님의 크신 이름을 듣고, 먼 곳에서 이리로 오면간구하는 것을 그대로 들어주셔서…”(왕상 8:41,43) 그러면서 이제까지는 원수들이요 죽일 대상이였던 이방인에게도 성전에서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열어 주고 있습니다


교회도 닫힌 공동체가 아니라, 열린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인 열린 공동체가 아니라, 한 교회 안에도 닫혀진 우리가 많아지고 있다면 과연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모양대로, 그리고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하나님의 교회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할 것입니다.

 

절망하고 있습니까? 글쓴이 : 윤희문 2017.10.26

절망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바닥이 없을 것같은 깊고 어두운 구멍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절망입니다. 지칠 줄 모르는 마음의 욕심을 채워보려고 몸부림치는 인생들은 절망을 다룰 시간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절망의 또 다른 이름은 어쩌면 욕구아니면 욕심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까요.


절망은 욕심에서 오고 그 절망을 피하기 위해 욕심은 더욱 커지고 그럴수록 절망도 더욱 깊어만 갑니다. 이 절망을 그대로 놓아두면 영혼의 상처가 깊어지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절망을 잊기 위해 욕심만 따라 살다보면 숨겨져있던 절망이 순식간에 쓰나미처럼 내 인생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에게 찾아가서 털어놓을 수도 없습니다. 아무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버림받았다는 느낌만 남을 수 있습니다. 기대했던 위로보다는 조롱과 비웃음이 메아리처럼 되돌아 오기도 합니다. 아직 우리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볼만큼 진실하지도 못하고 성숙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린 아직 완전히 알지 못합니다. 부분밖에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전부를 아는 것처럼 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절망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욕심덩어린 나도, 알지도 못하고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이웃도 오히려 더욱 목마름만 더하게 할 뿐입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아시듯 내가 나 자신을 안다면,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듯 나도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듯 이웃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세워놓은 울타리를 거둘 때 오직 하나님이 나의 방패가 되십니다. 그럴 때 나를 미워하고 힘들게 하느 사람까지도 안아주는 사랑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히 받아들여진 나의 모습을 보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다리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기대하는 방식이나, 내 욕구와 바램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을 채우고 나의 가장 큰 바램을 이루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다른 것을 다 빼앗기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만은 굳게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이 믿음이 나의 영혼을 치유해 줄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3:12)



우리의 고민과 슬픔 글쓴이 : 윤희문 2017.10.19

우리의 고민과 슬픔

 

고민과 걱정은 10개의 목숨을 가진 고양이라도 죽인다.” 는 속담이 있습니다. 마음의 염려는 이렇게 뼈를 상하게 합니다. 과거에 저지른 죄와 허물을 생각하며 갖는 고민, 어려운 현실 문제를 놓고 연약한 자신을 보면서 갖는 고민, 그리고 막연한 내일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고민이런 것들은 우리를 낙심시키고 좌절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여기에다 유언비어(蜚語)까지 퍼져서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혼돈하게 하고 관계를 어지럽혀서 사는 일을 더욱 힘들게 만듭니다. 흐를 유에 말씀언, 바퀴벌레 비에 말씀 언. 유언비어는 떠돌아 다니는 말은 해충같이 해롭다는 뜻으로 여기저기에서 떠도는 근거없는 소문을 말합니다. 요즈음은 social media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올려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데, 심지어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까지 그 대표적인 예로 백성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은 주로 Panera Bread에 가서 가까운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 장소가 가까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영어권의 교우들은 Panera Bread가 아니라 ‘Rumor Bread’라고 부릅니다. 모여서 교제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거기서부터 유언비어와 남을 비방하거나 과장되어 부풀어진 말들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 자녀들이 본 어른들의 모습이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습니다.

 

예수님은 마태와 누가복음에 보면, 예루살렘을 보며 한탄하신 기록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수님도 예루살렘을 향한 고민과 마음의 아픔 때문에 한탄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물론 끝없는 인생의 고통과 고민의 늪에서 건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져야할 근심이 있고 고민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고통과 혼돈과 불신과 허탈감 가운데 사는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비판의 소리, 심판의 소리, 자학과 욕지거리는 많지만 진실로 미국과 우리의 조국과 교회와 세상을 위해 눈 밑을 적시며 기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책임질 줄 아는 그리스도인은 이 사회와 민족과 세상의 어두움이 물러가도록 주님 앞에서 무릎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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