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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 사람들 글쓴이 : 윤희문 2017.09.13

이 세대 사람들

 

유진 피터슨이 쓴 이 책을 먹으라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제 예수를 영접하고 뜨겁게 신앙 생활하는 부부 이야기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재미가 너무 좋은 부부는 열심히 성경을 묵상하고 나누고 질문했다. 어느날 부인이 피터슨 목사에게 비유를 설명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피터슨 목사는 열심히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래도 부인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남편이 던진 조언의 말은 이렇다. “메리, 그대로 살아야해. 그래야 이해할 수 있어. 밖에선 도무지 알 수 없고, 그 안에 들어가야 돼. 아니면 그게 당신 안으로 들어오든지.”

 

유진 피터슨 목사는 존 캘빈의 글이라고는 단 한 줄도 읽지 않은 이제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하는 초년생인 남편 안토니의 말을 빌려서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지를 밝혀주었다. 요한 웨슬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고자 하는 소망과 그것을 행하려는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 곁에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거부하던 사람들을 이 세대 사람’(7:31) 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전하시는 기쁜 소식을 들으면서도 그 마음이 굳어져 있고, 자기 것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이 세대의 방식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세례 요한을 비판했고,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성경에서는 자기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물리쳤다.’(7:30) 고 합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을 하여도 울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고 마음에 뜨겁게 느낀다고 하면서도 제 고집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길 가요, 가시밭이요, 돌짝밭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가던 길을 멈추어서 살펴보지 않고, 옛길이 어딘지, 가장 좋은 길이 어딘지 물어 보지 않고, 우리의 영혼이 평안히 쉴 수 있는 길로 가지 않는’ (6:16)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지난 한 주간 나를 슬프게한 일이 무엇인가요? 나를 기쁘게한 일은 무엇이었나요? 내 영혼의 현주소를 알아볼 수 있는 질문입니다. 마음 속에 넣어주시고 마음에 새겨주신 말씀이 성령의 터치로 나의 영을 새롭게 하고 내 눈을 뜨게 하고 내 몸을 움직여 그 말씀이 내 삶 속에서 열매맺게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뜻을 알고 있나요? “나는 그들을 잘되게 함으로 기뻐할 것이며, 나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이 이 땅에 뿌리를 굳게 내리고 살게 하겠다.”(32:41)


내 손을 내밀어 드립니다 글쓴이 : 윤희문 2017.09.07

손을 내밀어 드립니다

 

헨리 나우웬이 춤추시는 하나님에서 서커스 곡예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중에서 제비를 도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많은 박수를 보냅니다. 그런데 실은 진짜 박수를 받아야할 사람은 곡예사의 손을 잡아 주는 곡예사가 진짜 영웅이라는 것입니다. 공중을 도는 곡예사의 말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팔을 내밀고 믿는 것뿐입니다. ‘잡는사람이 나를 잡아 끌어올려줄 것이라 믿고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삶의 기쁨과 슬픔, 아픔과 즐거움의 모든 가운데서 언제나 우리를 잡아 주려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이 바로 그런 분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어려운 수술을 받아야할 때를 기다리면서도, 고통과 싸우면서 절망적일 때도 그리고 기쁜 일이 있거나 승승장구하는 순간 뿐만 아니라 앞길이 막막한 순간에도 우리 곁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도 모든 것을 초월하셔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손을 마음 놓고 내밀어 드릴 있습니다. 기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슬픔까지도 무거운 짐인줄 알면서도 움켜쥔 살아가는 우리의 손을 폅니다. 우리를 잡아 이끌어 올려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맡겨드리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도 곡예사처럼 공중을 날고 춤을 추는 법을 배워갑니다.

 

노순이 권사님께서 수술 받으시던 , 새벽에 시편을 읽으며 은혜받으신 말씀을 나눕니다. “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한결같은 사랑을 나에게서 거두지 않으신, 하나님, 찬양 받으십시오.”(시편 66:20)


은혜로 삽니다 글쓴이 : 윤희문 2017.08.31

은혜로 삽니다

 

벌써 9월 입니다. 엊그제 우리 자녀들이 축구장에서 cheer leader 하면서 춤을 추던 날이 어제 같습니다. 그런데 벌써 아기 엄마들이 되었고, 우리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있습니다.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프랑스의 한 작가가 페이지도 매겨지지 않고 제본도  되지 않은 소설을 출판한 적이 있습니다. 독자들은 앞뒤가 온통 뒤섞인 책을 읽으면서 제각각 책의 내용을 파악하고 나름대로의 결론에 이르러야 했는데, 얼토당토않아 보이는 이 일은 방향을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어느 정신 분석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 세대는 자기 스스로와의 만남도 없이,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접촉도 없이다만 공허와 혼란, 혼돈과 무의미로 가득 찬 무기력한 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을 파멸시킬 만한 충본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자기 어깨에 매고 사는 사람은 분명 파멸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는다면 자유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불안하지 않고 평안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결국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항상 끌려 다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부모님에게, 학교에서, 배우자에게, 자녀들에게, 직장에서 누군가의 노예가 되어 살아온 인생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황혼기에는 허무하고 공허하다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덩그리니 양로원의 작은 침대 하나 놓여있는 방이 남아 있는 모든 것입니다. 내 인생을 스스로 이끌어 온 줄 알았는데 정작 나를 위해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내 인생을 하나님이 운행하시는 배라고 믿을 때 우리 인생의 의미는 달라집니다. 주님을 믿고 경배하며 찬양하며 나아갈 대 자연의 법칙과 이성의 법칙을 넘어선 초자연적인 은혜와 긍휼의 법칙이 우리를 감싸주는 것입니다. 근심과 걱정이 나를 둘러싸도 싸이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만나도 답답해하지 않습니다. 앞을 가로막는 홍해의 파도가 갈라지고 먹을 것이 없을 때 만나를 주시며 물이 없을 때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절망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운행하시도록 초청하는 가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어도, 성취되는 것은 오직 주님의 뜻뿐이다”(잠언 19:21).


내가 한다 글쓴이 : 윤희문 2017.08.22

내가 한다

 

목장 예배에서 마가복음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을 깊에 이해하려면 전체적인 그림을 알고 읽어야 합니다. 마가복음의 주제 가지는 예수님의 이적과 수난입니다. 마가는 두가지로 예수님의 사역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8 까지는 예수님이 이적이 주로 나타납니다. 그렇지만 후반부에 접어드는 9장부터는 이적은 줄고 수난이 늘어가는 것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마가복음을 서론을 가진 수난의 기록이라고도 합니다. 수난을 말하기 위해 8장까지의 말씀이 서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분에 대해 깨닫지를 못했습닏. 베드로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지만 뒤이어 수난받을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은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마가는 특별히 벳새다의 소경을 고치신 사건을 통해 이런 제자들의 영적인 눈이 떠지기를 바라셨습니다. 우리가 만일 이적을 베푸시며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자를 고치시는 능력을 주님을 있다면, 이제는 수난을 받으셔야할 예수님에 대해서도 우리의 눈이 떠져야한다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말을 더듬는 사람을 고치시며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탄식하셨다고 했습니다. 탄식은 아직도 예수님께서 땅에 오셔서 하셔야할 일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 못하는 불쌍한 무리들을 향한 탄식입니다. 아직도 스스로의 힘으로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 보려는 백성들을 향한 탄식입니다. 오천명을 어떻게 먹여야할지 고민하는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내가 한다 말씀하십니다. 이적을 베푸시는 예수님께서 병도 고치시지만, 우리 스스로 갚을 없는 죄의 댓가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수난을 당하심으로 대신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 중에는 믿음을 중요시하는 에수 믿음이 있고, 실천을 중요시하는 예수 따르미 있습니다. 필요하지만, 이것에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이제는 그것을 넘어서예수 닮음이 되어야 합니다. 세가지가 우리 신앙 생활에서 연결 고리가 되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갑니다. ‘성경 읽기는 읽기이고, 만들기이며, ‘성경읽기는 세상읽기이고, 세상 만들기입니다.

 


열방에 전하는 구원 글쓴이 : 윤희문 2017.08.22

열방에 전하는 구원

 

오늘부터 제자 훈련 수강 신청을 받습니다. 우리는 제자 훈련을 받으며 성경 공부를 할까요? 제직이 되기 위해서만도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알기 위해서만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만이 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이유와 복의 통로는 있어도 궁극적인 제자 훈련의 목적은 아닙니다.

 

오늘날 불신자들은 우리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어느 때보다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고 따른다고 스스로 고백합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구세주요 주님요 친구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살아계시고 다시 오신다고 선포합니다. 세상은 그런 우리에게 따져 묻습니다. ‘그래서 너희 그리스도인들은 뭐가 다르지? 너희 하나님은 지금 어디 있지?’

 

오늘날의 교회는 전도가 힘들고 되지 않는다고 할까요? 교회 성장은 불신자들이 믿게 되어 세례를 받아 교회 교인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왔든 이미 믿는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기 위해 돌아 다니는 백화점의 가게같은 형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삶과 행위를 통해 사람들에게 살아계시는 하나님과 분의 능력을 실제적으로 증명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복과 자비와 얼굴의 환한 빛이 우리에게 머물 있도록 마땅히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단지 하나님의 총애를 입고 그분의 은혜를 독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안에 살아 움직이는  그분의 복과 아름다움을 통해 그분께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자 훈련과 성경 공부는 이런 열매를 거두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구하는 것이 단지 우리의 이기적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듯 다른 이들에게도 복이 이기적인 목적으로만 끝나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열방의 구원을 목적으로 살아야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제자 훈련을 받아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는 사람이 되고, 그래서 우리를 통해 그분의 구원을 세상에 알리기 원해서 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자 훈련은 구원받은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통해, 영원히 하나님을 인정하고 사모하여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방의 구원을 바라고 소원하지만 단지 열방의 유익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고 영광이 드러나도록 우리는 훈련받고 주님을 닮아가며 열방의 구원을 위해 쓰임받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 주님의 얼굴을 환하게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어서, 세상이 주님의 뜻을 알고 모든 민족이 주님의 구원 알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 민족들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십시오.”(시편 67:1-3)


행복한 이유 글쓴이 : 윤희문 2017.08.10

행복한 이유

 

하나님의 사람들은 행복자 입니다. 모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지파를 위하여 축복하고 결론적으로 외친 말은 이스라엘이여 너희는 행복자로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신명기 33:20-29)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땅에서 행복을 얻기 위해 그것을 찾고 구합니다. 그러나 행복의 파랑새는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잡으려면 자꾸만 멀어져갑니다. 행복은 사람이 힘이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거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사람을 창조하시되 행복하게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하나님의 형상을 잃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진 사람은 이상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끊어지면서 행복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신 것은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건져주셔서 민족의 역사와 삶에 간섭하셨습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일들을 이루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거역했지만 그들을 가나안 앞에까지 지난 40년동안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행복자인 이유는 그들이 이제 땅을 차지하게 되어서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그들로 행복자가 되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강을 주시고, 물질을 주시고, 고생하지 않게 하셔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기로 택하시고 부르셨기에 우리는 행복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있겠습니까? 환란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로마서 8 35)


고난이 기도와 만나면 글쓴이 : 윤희문 2017.08.02

고난이 기도와 만나면

그동안 새벽 기도 말씀으로 욥기를 모두 마쳤습니다. 욥기에서 욥의 고난과 인내는 핵심입니다. 야고보도 그의 편지에서 욥이 어떻게 참고 견디었고, 또 주님께서 나중에 그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쓰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하게 되었습니다.” 고 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이의 믿음은 고난에 의해 강하게 세워지기보다 산산조각나서 파선해 버립니다. 예수님은 이를 알고 계셨고 가지 밭의 비유에서 이를 묘사하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는 말씀을 기쁨으로 받지만, 고난이 찾아오면 그들은 떨어져 나갑니다. “그들 속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하고,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진다”( 4:17) 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항상 믿음을 강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고난은 믿음을 파괴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뭇 역설적으로 들리는 말씀들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요,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4:25). 고 합니다.

 

고난은 장래의 은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이를 견딤으로써, 믿음이 자라서 강해지고 그것이 헛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라는(고린도전서 15:2) 부름입니다.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요"(4:25).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것은 고난을 통해 성장하는 주요 수단 하나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기도와 만나면 깨어짐이 일어납니다. 자아의 깨어짐입니다. 단단해진 마음의 깨어짐입니다. 그리하여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 낮아진 마음이 됩니다. 잘 갈구어진 마음이 됩니다. 깨어진 마음 속에 말씀이 떨어지면 깨달음이 생깁니다. 깨달음이 생기면 순종하게 되고 지속해서 순종하면 열매를 맺습니다.

 

만약 우리의 고난이 아무런 목적도 향방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난을 다스리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거나, 하나님이 변덕스럽고 잔인하다고 생각한다면(욥이 그런 것처럼),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도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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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은 어떻게 하나? 글쓴이 : 윤희문 2017.07.27

묵상은 어떻게 하나?

 

경건의 시간에 말씀 묵상을 하는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제가 볼 때엔 어느 방법으로 하든지 좋습니다. 특별히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내게 편한 방법으로 하면 됩니다. 하지만 어느 방법으로 하든지 우리가 마음에 꼭 담아 두고 해야할 묵상의 자세가 있습니다. 이 묵상의 태도는 어느 방법으로 하든지 항상 지켜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늘 우리에게 말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듣게 됩니다. 말할 때는 귓속말로도 듣고, 손을 잡고 있을 때는 손을 통해서 듣고, 눈을 바라볼 때는 그 눈길을 통해서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듣습니다. ‘사랑해요!’ 그리고 서로 떨어져 있을 때도 사랑하는 사람의 음성은 내 마음을 떠나지 않고 늘 지금 곁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도 똑 같습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말씀을 사랑하면 그렇게 됩니다. 성경 말씀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매일 내 가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굳이 이치를 따지지 않습니다. 분석도 하지 않습니다. 어느 때는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그런 줄 알고 믿어줍니다.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음 속으로 깊이 담아두며 달콤함을 즐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 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을 묵상이라고 하고 큐티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런 일이 정말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었을까?” 라고 묻지 말고 다만 이 말씀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기를 원하는가?” “내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나?” 라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 말씀을 오랫동안 우리 마음 속에서 되새김질 해봅니다. 그 말씀이 성경책에서 읽은 활자가 아니라 나에게 분명해져서 내 가슴에 새겨질 때까지 그리고 나의 것이 될 때까지.


영성 지도 글쓴이 : 윤희문 2017.07.20

영성 지도

 

목자와 목녀가 일대 일로 목장 가족들을 양육하는 훈련을 오늘부터 받게 됩니다. 생명의 삶을 마친 교우들이 다음 제자 훈련으로 확신의 삶을 합니다. 7주 과정인 이 훈련을 남자인 경우엔 목자, 여자인 경우엔 목녀와 함께 일대 일로 훈련을 받으면 됩니다. 목자와 목녀가 일대 일로 양육하기 위해 다시 확신의 삶을 재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영성 지도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단순한 성경 공부가 아니라 함께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그만큼 친밀한 관계와 영적 교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영성가 중에 토마스 머튼(1915-1968)이 있습니다. 이 분은 칠층산이란 자선적인 책을 썼는데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성경보다 더 많이 읽힌 책이라고 합니다. 콜롬비아 대학에서 문학박사까지 한 석학인데 시를 쓰고 재즈에 열광하면서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무신론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내면의 깊을 갈등을 겪다가 극적으로 회심하고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하여 그가 죽기까지 수도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그동안 45편의 작품을 썼는데 칠층산은 자선적인 대표작입니다.

 

나는 이렇게 살았다는 자기 이야기가 칠층산입니다. 자기 내면의 체험을 기록한 글입니다. 머튼은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고 가장 자기다운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 거룩하다는 것은 그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그의 책, ‘균형, 그 조용한 목회 혁명에 보면, 목회에서 중요한 세 가지를 말씀과 기도와 영성 지도라고 꼽습니다. 헨리 나우웬도 영적 발돋움에서 세가지를 똑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목자가 목장을 섬기며 목양하는 것도 목회입니다. 목자에게도 이 세가지가 필요합니다.

 

목자에게도 말씀과 기도가 필수입니다. 뿐만 아니라, 목장 가족들을 돌보며 영성지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멘토링과는 다른 차원의 관계입니다. 멘토링은 전수의 측면이 강조되지만, 영성 지도는 함께하는 동반자적 관계를 더욱 중요시 합니다. 서로 대화를 들어주고 삶을 나누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게되는 관계입니다. 목자와 목녀들이 일대일로 목원 가족들과 만나는 훈련의 시간이 바로 말씀과 기도, 영성지도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너는 말씀 묵상이나 제대로 해라 글쓴이 : 윤희문 2017.07.13

너는 말씀 묵상이나 제대로 해라


제가 목회하면서 항상 부러워하는 가지가 있습니다. 모든 목회자가 노래를 잘한다는 사실에 놀라곤 합니다.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화음까지 맞추어 가면서 합니다. 저는 그래서 항상 노래 잘하기를 바라고  노래 잘하는 사람을 부럽게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는 말주변이 없습니다. 원래 말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말을 필요가 없을 때는 별로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불평이지요. 어디 차를 타고 가는데 시간이고, 시간이고 말없이 간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게 편하거든요. 그런데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타고난 것이라 쉽게 되지 않고, 말주변도 마찬가지 입니다. 특별히 말을 소금같이 고르게 있는 지혜도 구하지만 그것도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가끔 목회는 잘하는지 마음이 울적해지기도 합니다.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는 같은 생각이 듭니다. 게으르지 않게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고 목회하려고 애써 왔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소리도 속에서 들려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말씀 묵상을 하며 말씀이나 외워보았니?”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내가 무슨 공로를 세우고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목회를 하고 못하고가 아니라는 말씀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욥과 엘리후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모두 흙으로 지음받아 누구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란 사실입니다. 결국 내가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고후 4:7). 그래서 올해는 더욱 말씀에 깊이 들어가고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일을 열심히 합니다. 말씀도 제대로 묵상하지 않고, 외우지 않으면서 노래를 잘하면 무엇하며, 설교를 잘하고, 말주변이 좋아지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입니다. 무슨 훌륭한 일을 했다는 것이 누가 하는 일이냐는 것이죠.


 오직 말씀으로 주님의 뜻을 구하고 순종하면서 주님을 따를 열매도 맺고, 신앙이 성숙해져갈 것입니다. “말씀 묵상이나 제대로 하라 주님의 음성은 핀잔이 아니라 인생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를 밝혀주시는 충고였습니다. 최선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음성에 순종할 맺어지는 열매입니다.



목장은 헤어지기 위해 모입니다. 글쓴이 : 윤희문 2017.07.07

목장은 헤어지기 위해 모입니다.

 

아직 목장에서 모이는 예배에 참가하지 못하는 교우들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목장 예배는 초대 교회에서부터 내려오는 신앙 훈련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가정에서 교회로 모이는 목장 예배도 예수님 중심입니다. 사람 중심이 아닙니다. 누구나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가까운 사람들과 모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가정 형편이나 건강 문제로 목장에 속하지 못하고 있는 모든 교우들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는 목장 예배를 드리는 분명한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인다고 영원히 그렇게 그 목장이 그대로 남아있기를 바란다면 시작이 첫 단추부터 잘못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2년마다 목장을 개편하기로 한 이유는 목장이 처음 모일 때와 똑같이 같은 사람끼리만 모이게 되어 분가하지 않고 있는 목장들이 다른 형제 자매들하고도 함께 교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한 몸이요 한 가족입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목장에 속하여 목장 예배와 전도와 사랑의 나눔과 섬김의 기쁨과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현재 모이고 있는 목장들도 최선을 다해 영혼을 구원하고 예비 목자를 세우고 분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장이 됩니다. 같은 목원들만 2년을 함께 모이다가 개편하여 다시 다른 목장으로 가게 되면 하나님 나라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입니다. 목장 예배는 친교도 중요하지만 함께 기도하며 섬기면서 영혼을 구원하는 기쁨이 넘쳐야 합니다. 그리고 분가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장막터를 넓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 신앙 성숙이요 그렇게 되도록 훈련받는 곳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빌립보서 2:6,7). 우리가 진정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하는데, 내가 꼭 원하는 목장으로,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형제나 자매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고 고집한다면 예수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실 때 그렇게 가려서 오셨을까요? 예수님은 외양간의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끝까지 충성한 로제타: 조선 회상 글쓴이 : 윤희문 2017.06.30

끝까지 충성한 로제타: 조선 회상

 

로제타 선교사는 한국에 여자 의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의과 대학을 졸업한 후 윌리엄 제임스 홀 선교사와 결혼하여 1891년에 파송되었습니다. 서울 외국인 묘지 공원, 양화진에 묻혀있는 분의 간단한 약력입니다. 서울에 가면 한번씩 꼭 들려보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하철 2호선 합정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5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습니다. 오후 5시면 문을 닫습니다.

 

로제타 선교사는 남편 제임스 홀 선교사와 함께 교육 사역과 병원 사역을 하면서 평양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해 7월에 일어난 청 일 전쟁으로 폐허가 된 평양에서 닥터 제임스 홀 선교사는 사람들을 치료하다가 병에 감염되어 죽었습니다. 그 당시 임신 말기였던 로제타는 미국으로 돌아가서 예쁜 딸을 낳았습니다. 그러던 중 다시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네 남편 윌리암 제임스 홀이 이루지 못한 조선 사랑을 네가 이루어라.”

 

로제타는 곧 조선으로 돌아왔으나 조선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토록 사랑하던 딸마저 풍토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게 되었지요. 딸을 남편의 묘 옆에 묻으면서 로제타는 다시 한번 결심했습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내 아들, 셔우드 홀과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역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로제타 선교사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그 아들 셔우드도 의사가 되어 조선을 복음으로 섬기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한 한 가정의 헌신이 오늘 와싱턴 락빌에 우리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배를 드리게한 열매입니다. 우리 교회도 매년 여름이면 단기 선교를 갑니다. 여름 행사 중의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께 부름받은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소중한 사역이며 포기할 수 없는 특권입니다. 매주 토요일 새벽 기도가 끝난 후 이번 니카라구아와 콰테말라 선교팀이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선교에 함께 동역하여 주님의 대사명을 이루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내는 선교사도 좋지만, 거기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한번은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는 선교 현장의 흙을 밟아보며 복음의 향기와 땀과 꿈을 가슴에 담고 돌아오는 은혜의 체험을 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로제타 선교사의 아들, 셔우드도 부모님의 뒤를 이어 조선에서 선교 활동을 펼칩니다. 그가 쓴 조선 회상(With Stethoscope in Asia: Korea by Sherwood Hall) ’이란 책은 당시 조선의 모습과 선교 현장에서 하나님이 일하신 놀라운 능력의 흔적들을 생생하게 볼 수 있고 느끼게 하는 책입니다. 우리 교회 도서실에도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내게도 있는 사랑의 흔적 글쓴이 : 윤희문 2017.04.13


 

수십 만주에서 20개월이 지난 아이 명이 천연두를 앓았습니다. 의료진이 없어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아이는 안타깝게 죽고 말았습니다. 여자 아이 명만 간신히 목숨을 건졌는데, 그의 얼굴에 천연두 자국이 남아 다른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평생 것을 생각하니 이상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순간순간 죽고 싶은 마음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얘야, 마마 자국은 하나님이 너를 살려 주셨다는 증거이고 축복의 표시란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녀의 마음 속에 확신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시며 참된 인도자시라는 확신이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뉴욕에 있는 한인 교회의 목회자 사모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녀거 외모만 생각했더라면 차라리 죽는게 나았을 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에 하나님이 임하셨기에 마마 자국이 사랑과 은혜의 흔적으로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기억 속에 내가 있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같아 외로워지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나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잊지 않으시려고 손바닥에 이름을 새기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벅찬 일입니다. 하물며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시다니,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이것은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고난과 역경에 빠진 나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고 슬퍼하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나를 잊어도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한없는 능력과 은혜로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두고서는 약점 밖에는 자랑하지 않겠다.’ 같습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분명 주님께 사랑받는 흔적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허리의 가시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오히려 승리가 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사랑의 흔적이 빈무덤이었습니다.   몸이나 삶에 새겨진 하나님의 사랑의 흔적이 있습니까?


가장 잘난 사람 글쓴이 : 윤희문 2017.04.08

가장 잘난 사람

 

하나님은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라 하시면서 마음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하십니다( 2:3). 스스로 잘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없기 때문에 주님이 속에 머물러 계실 없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옛것을 배설물처럼 버려야 예수님을 따라갈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주님을 따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사람입니다( 12:2).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모두가 주님의 제자는 아닙니다. 자신의 옛습관을 하나도 버리지 않으면서 주일 교회에 나오거나 봉사한다고 해서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옛습관이나 내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배설물처럼 쏟아붓고 주님의 보혈로 씻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어도 우리를 위해 주님이 십자가에 박히셔서 죄를 사해 주셨기에 지난 날에 대해 정죄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죄를 단번에 씻기시려고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입니다. 그런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우리가 일이 있습니다. 옛사람을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있는 양자로서 갖춰야할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새사람을 입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행할 있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골고다 언덕에서 박히신 주님의 십자가에 비하면, 우리가 고난이라고 여기는 것도 지극히 작고 작은 십자가가일 뿐입니다. 우리는 고통의 때에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골고다 언덕을 항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고통의 십자가를 지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더욱 혼란스러워 집니다. 그리스도인이 모든 억울함과 안타까움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세상에 먹구름과 같은 어둠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주님의 나라가 이뤄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나의 십자가를 지고 있을까요? 무엇보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억울함 때문에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에 때마다 일로 인해 감사하고, 일을 온전히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오직 주님 앞에 상처를 토로하며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주님의 골고다 언덕에 내려 놓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있는 사람이 가장 사람입니다.


마른 시냇물 바닥에서 글쓴이 : 윤희문 2017.03.30

마른 시냇물 바닥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구절은 시편 42편에 나옵니다. 그런데 물을 찾아 헐떡이는 곳이 시냇물 바닥이었습니다. 물이 있어야할 곳에 물이 없어서 죽을 지경이 것입니다. 비가 오지 않아 시냇물 바닥까지 말라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편 기자는 영혼이 주를 찾아 헐떡입니다내가 언제 하나님께로 나아가 얼굴을 뵈올 있을가?’ 기도합니다.

 

성경에는 열왕기상 17장에 마른 시냇물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땅에 가 내리지 않으므로, 얼마 있지 않아서, 시냇물까지 말라 버렸다”(7). 선지자 엘리야가 사역을 시작할 무렵 하나님이 보내신 곳이 그릿 시냇가였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서 간 간 곳인데 그릿 시내는 말라갔습니다. “나는 거기서 너를 먹일 것이다. 너는 그 시내에서 마시고 만족할 것이다.” 란 약속으로 하나님의 영이 엘리야를 인도했습니다.

 

마시던 시냇물이 말랐을 때 엘리야는 목말라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말라 버린 시내를 허락하심으로 우리의 자만심을 그치게 하시고,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하나님을 기억하고 의지하게 하십니다. 시내에 물이 가득히 흐르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면, 물이 말라버린 시내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이 말랐기에 더욱 하나님을 사모하고 찾게 되는 것도 은혜입니다.

 

시내가 말랐다고 한숨을 쉴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마른 시냇물 바닥에서 믿음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찾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 안에서 그 샘물을 발견하고 마을로 달려내려 갔습니다. 사람들이 무서워 혼자 물길러 오던 여인의 목마른 인생에 단비가 내렸습니다.


내가 있는 곳에 물이 없나요? 나의 가정이, 나의 교회가, 내 직장... 내가 있는 곳이 마른 시냇물 바닥 같은가요? 오히려 그곳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내 배에서 넘쳐 흐르게 하시는 주님을 찾을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목마른 사람은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외치시던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목마른 사람이 되고, 마른 시냇물 바닥이 오히려 기쁨과 찬양의 예배의 자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 암송은 사랑 고백입니다 글쓴이 : 윤희문 2017.03.23

말씀 암송은 사랑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로서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다양한 사랑의 표현 방법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말씀 암송입니다. ‘하나님이 참 좋아서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암송할 때는 마음이 기뻐집니다. 우리의 생각의 주파수가 온전히 하나님 한 분에게로 집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암송하기 위해 입으로 그 말씀을 외울 때 내 마음은 천국이 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랑의 고백이 됩니다. 암송하는 말씀이 내 삶에서 나를 늘 새롭게 하고 죄를 이기는 생수의 샘물이 되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성경을 암송한다는 것은 말씀을 마음에 간직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의 뜻 행하기를 즐거워합니다. 주님의 법을 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시편 40:8).

 

성경 암송을 정기적인 생활 습관으로 삼기를 바랍니다. 영적 성장에 이 보다 더 중요한 길은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길잡이가 되는 권위의 원천입니다.

 

·        성경 구절을 애매하게 요약해서 외우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외워야 합니다.

·        성경 구절을 되풀이해서 말할 수 있으면 묵상하기가 쉬워집니다.

·        성경 구절을 마음에 담고 있으면 전도와 신앙 고백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        성경 구절을 암송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즘에는  smart phone   있어서 이전보다 말씀 암송이 훨씬 쉬워졌습니다. 성경책을 갖고 다녀야하는 불편이 없어졌습니다. 언제나 짜투리 시간이 나면 스마트 폰을 열어서 원하는 말씀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약간의 계획과 노력을 기울이면, 우리가 낭비할 수 있는 잠깐 동안의 시간이라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외운 구절을 제대로 암송하고 있는지 쉽게 확인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 동안에 말씀 암송의 새로운 경건 훈련과 습관을 세워보기를 바랍니다. “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인의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시편 1:1,2).


이신칭의(以信稱義) 이해하기 글쓴이 : 윤희문 2017.03.17

이신칭의(以信稱義) 이해하기


문자 그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 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기억할 것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라는 말은 인간의 속성이나 품성 자체가 의롭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대한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법정 선언과 같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모든 인간은 때문에 죽게되었습니다. 따라서 의로운 행위로는 구원얻을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3:9-20).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시고 언약을 세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어느 누구도 모든 하나님의 의로운 법을 따르고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죄인으로 정죄받을 밖에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 얻을 있다는 점을 증거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 이신칭의입니다.


우리는 외적인 것에만 관심을 가지는 위선과 형식주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공로와 행위에만 치중하게 되면 인간의 내면의 변화를 소홀히 여기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 대한 전인격적인 교제가 이루어질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어느 누구도 자랑할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거저주시는 선물입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는 오직 믿음(Sola Fide) 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면죄부를 주고 사면 죄가 사해진다고 주장하던 카톨릭 교회의 불의에 대항했습니다. 교회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핵심인 로마서를 통해 주님께로 돌아오고 쓰임받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신칭의 구약의 하박국으로부터 시작해서 바울, 어거스틴, 루터, 캘빈 그리고 웨슬리에 이르기까지 로마서는 이들의 신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 동안 로마서를 찬찬히 읽어가며 묵상하면서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부름을 받아 calling 회심 conversion→ 중생 regeneration 신앙 faith → 칭의 justification → 양자 adoption → 성화 sanctification → 견인 perseverance → 영화 glorification 이르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시간적인 순서라기 보다는 구원의 여정에서 일어나는 변화된 삶의 내용을 정리해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2).



말씀의 화살과 말씀의 징 글쓴이 : 윤희문 2017.03.09

말씀의 화살과 말씀의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 전쟁에서 유일한 무기입니다. 핵심이 되는 성경 구절을 암송하는 것은 마음에 화살을 간직하는 것과 같습니다. 악한 영들과 싸워 이길 있는 무기입니다. 말씀의 화살은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입니다. 성령님께서 화살을 우리의 입술의 활에 당기셔서 그리스도를 위해 악한 영들을 물리치시는 공격 무기가 되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영생을 주기로 작정하신 영혼들의 굳어진 마음의 문을 꿰뚫어 있게 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웰빙(well-being) 내세우며 삶의 질을 높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모두 몸에 관한 뿐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는 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라고 합니다. 우리는 영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항상 성경의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말씀으로 하늘의 지혜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오직 말씀만이 우리의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고 무력한 삶을 생동감 있게 만듭니다.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빚어지고 있다. 하나님이 내 영혼의 돌덩이를 깎아 원망의 돌조각들을 파내시도록 하나님 앞에 잠잠히 있는 것이 진정한 영성 훈련이다.’ 돌덩이를 깎는 도구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의 화살은 마귀를 대적합니다. 반면에 말씀의 징은 우리를 깎아 내시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습니다.

 

창문을 통해 봄햇살이 온 방안에 가득해지면 온 몸이 밝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우연이나, 감정, 느낌이 아닌 하나님의 손길이요 놀라운 섭리가 햇살처럼 나를 비추실 수 있도록 말씀 앞에 나를 잠잠히 내어드릴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생각을 깨끗하게, 생활이 깨끗하게, 사람 대하는 태도가 깨끗하게, 말이 깨끗하게, 그래서 인간 관계가 깨끗해지게 하는 성령의 사람으로 자라가는 사순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lectio divina 글쓴이 : 윤희문 2017.03.01

말씀 묵상은 이렇게 합니다

 

사순절 기간 경건의 시간을 가지면서 묵상할 말씀을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 묵상에 도움에 될 수 있는 교회의 전통 한 가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목장 예배에서도 이 묵상 방법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며 은혜 받기를 바랍니다. 렉티오 디비나(Lectio Divina) 라는 독서법입니다.

 

먼저, 렉티오( lcetio) 입니다. 읽기 입니다. 본문을 먼저 충분히 읽어가는 과정입니다. 아무런 사전 해설을 읽거나 설명을 듣지 않고 말씀을 읽으며 말씀에 잠기는 시간입니다. 입으로 읽기도 하고 눈으로 읽으며 묵상합니다. 여럿이 함께 읽는 경우엔 교독하며 읽기도 하고, 한 사람이 읽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 말씀을 마음에 그리고 듣습니다. 이렇게 읽기는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른 방법으로 읽어가며 충분히 그 말씀을 익히게 됩니다.

 

읽기가 끝나면, 메디타티오(meditatio), 다시 말하면, 묵상 입니다. 혼자 읽을 때는 참고 서적과 해설이 있는 책들을 통해 본문을 연구합니다. 이 때 목장에서는 인도자가 이 일을 맡아서 합니다. 읽은 말씀의 의미를 당시의 역사적 배경에서 살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오늘의 삶에 적용하는 과정입니다.

 

그 다음이 콘템플라티오(contemplatio) 입니다. 관상이라고 합니다. 각자의 영적 수준에 따라 하나님의 계시를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내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내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 깨달은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영적 충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깊은 차원의 진리를 경험할 수 있는 과정입니다. 성경의 계시에 순복하는 결단으로 보면 됩니다. 받아들인 말씀이 머리나 가슴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말씀을 살아내는것입니다.

 

마지막이 오라티오(oratio) 입니다. , 기도입니다. 본문 묵상을 통해 깨달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시간입니다. 찬송은 곡조있는 기도입니다. 이 때 찬송을 함께 부르고 각자의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이 네가지 단계를 꼭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이런 순서로 하게 되면 가장 효과적인 말씀 묵상이 될 수 있습니다. 제자 훈련을 통해서 경건의 시간 말씀 묵상 방법에 어쩌면 다른 이름을 붙인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전통적인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서는 내용 관찰’ ‘연구와 묵상’ ‘느낀점그리고 결단과 적용이라고 했습니다. 개인의 경건 시간에 이용할 수 있지만, 소그룹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목장 예배에 도입하여 묵상 훈련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글쓴이 : 윤희문 2017.02.22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요즈음 시대를 유비쿼터스(Ubiquitous)’ 세상이라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정보를 유통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구글에서 만든 작은 Echo Dot 방에 놓아두고 말로 모든 필요한 것을 얻을 있는 시대입니다. 신발과 양말, 가구 손잡이에 있는 컴푸터 칩으로도 엄청난 일들을 있게 됩니다. 그저 놀랍기만 문명의 발달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편리해지고 쉬워졌다고 해서 우리 삶의 질이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럴까요? 세상의 지식과 정보는 결코 우리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지식과 정보는 우리 속에 있는 속성과 예수를 영접한 후에 갖게된 새로운 속성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우리는 자칫 정보나 지식을 위해 읽을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많이 읽는 같기도 한데, 진정한 변화없는 공허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있습니다. 아니면, 지루한 책으로 아예 성경책을 열지도 않고  읽지도 않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칠층산 저자인 토마스 머튼은 우리에게 성경을 읽는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읽는 방식(informational) 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을 통해 삶이 변화되는 방식(formational) 입니다. 물론 우리가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말씀을 통해 변화되는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두가지 방식이 모두 필요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우리 존재의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통해 삶이 변화되는 방식 필수적입니다. 눈과 생각만 가지고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 가지고 전인격적으로 성경 말씀을 읽을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이 날마다 가능합니다. 나를 새롭게 하는 성경 읽기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고 필요하게 유비쿼터스 세상 입니다.

 

하루에 신약 성경 장씩 읽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안에 임하게 되는 체험을 있기를 바랍니다. 목자되신 에수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이 안에서 나를 다스리시는 인도하심에 순종할 있는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사순절에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하나님과 고독한 시간을 보내는 경건의 습관을 기를 있기를 바랍니다. 어찌 보면 낭비 같지만, 그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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